지금까지의 순례길 중 가장 편안한 잠자리를 가졌다. 호텔 부럽지 않은. 역시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이 최고인 것 같다. 덕분에 컨디션도 굿!

 

폰프리아에서 잘자고 일어나 준비를 하다보니 비교적 이른 출발을 하게 됐다. 아직 해 뜨기 전이었고, 주변의 모습도 이제 막 형체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었다. 마을을 벗어날 때쯤 날이 밝아지기 시작했고 어제에 이어 높은 지대에서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나아갔다.

 

 

오늘은 내리막이 계속 되는 길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니 내리막을 계속 걸어서 다리에 무리가 갔을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위도 있었다. 옷을 다 입었는데도 추위를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고산지대라 보니 확실히 기온이 낮은 느낌을 받았다. 

 

 

첫 마을을 지나고 나서부터 걸음이 계속 늦춰졌다. 주변의 확 트인 풍경이 내 눈과 몸을 자꾸만 이끌었기 때문. 보고 또 보게 되고, 다시 보고 싶고... 그렇게 바라보며 사진 찍고 영상도 찍고 하다보니 시간이 점점 늦춰지게 됐다. 그래도 어쩌나, 그렇게 몸이 움직이고 그렇게 하는 게 즐거운 것을!

 

 

맘껏 자연의 풍경을 즐기다 한 마을에서 브런치를 먹게 됐다. 그러고 보니 일어난 지 5시간 여만에 물한잔 먹은 것 빼고 처음 먹는 음식이었다. 워낙 풍경에 빠져있다보니 배고픈 것도 못 느꼈는데, 음식을 먹기 시작하니 식욕이 금방 돌아왔다. 시킨 것만으론 부족해 마트에서 샀던 빵도 꺼내서 먹었다.

 

 

원래 이 마을이 안내서에 목적지로 나와있는 마을이기도 했는데, 상점에 들렀을 때 배낭을 갖고 들어오지 말라고 쌀쌀맞게 말한 것이며, 식당 주인에게 작별인사를 했는데 퉁명스런 대답을 들은 것을 봤을 때 정이 들지 않는 마을이었다. 역시 사람이 좋아야 머문 곳이 좋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곳에서 사리아로 가는 길이 두 갈래로 나뉘었는데, 사모스에 머물기로 결정했기에 방향을 그쪽으로 잡았다. 진입부분에선 도로를 옆에 끼고 가야 했는데, 대형트럭이 지나가자 위협적으로 느꼈다. 다행히 도로구간이 길지는 않았고 다음 마을로 들어가면서 산행 구간으로 걷게 됐다.

 

 

여기 마을부터 사모스 전까지는 조그만 규모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은 시골 느낌의 마을들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나무를 비롯한 식물들이 타 있어 잿빛과 검은빛의 어우러짐이 한동안 지속되다가 어느 지점부터 초록빛을 조금씩 띠기 시작하면서 그제서야 숲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한참을 가늘게 비가 내리는 숲길을 걷다 사모스를 가르키는 표지판이 나왔고, 곧 커다란 수도원 건물이 나타나는 것을 보며 사모스로 들어가게 됐다. 사모스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 정도여서 더 갈 수도 있었으나 발가락 하나가 물집이 잡힌 것 같이 계속 쓰라렸고 날씨도 우중충해서 여기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사모스
사모스

 

수도원 가는 길에 알베르게 표시를 발견했다. 가보니 그곳이 찾고 있던 숙소가 맞았다. 잠겨 있는 듯한 문을 두드리니 조금 있다 한 여자가 나왔다. 먼저 도착해 있던 불가리아 순례자였다. 그녀도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들어와서 미리 자리잡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숙소를 살펴보니 시설이 꽤나 낡아보였고 깨끗해 보이지도 않아 어떻게 할지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물이 잘 나오고 기부제로 운영되는 곳이어서 그냥 이용하기로 했다.

 

사모스-알베르게
사모스 알베르게

 

자리정리를 하고 주변탐방을 하고 나니 다리에 통증이 느껴져 더이상 돌아다닐 생각이 들지 않았다. 비도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 숙소 안이 싸늘했다. 따뜻한 차라도 마셔야 감기에 안 걸릴 것 같은 기분. 숙소 안은 상당히 넓었는데, 이 공간에 나중에 들어온 1명까지 해서 3명 뿐이라 더욱 휑하게 느껴졌다. 숙소가 와이파이가 안 되서 저녁을 먹을 때 필요한 건 해결하기로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비는 여전히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다. 조용한 숙소 안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잘 듣지 않던 음악을 이어폰에 연결해 가만히 듣고 있으니 노래의 감성에 온전히 빠져드는 느낌. 색다른 기분이었다.

 

그러나저러나 이제 비는 좀 그만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좀 돌아다닐 맛이 나니까. 이 비와 함께 잠을 자고 나면 내일의 태양이 반짝 하고 뜨기를 바래본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