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다섯번째 시간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에 대한 탐구는 반드시 타자에 대한 호기심을 야기하는데요. 사람보다 더 흥미롭고 심오한 텍스트가 있을까요? 사람에 대한 탐구, 그것이 곧 우정이고 배움입니다. 우정과 지성이 함께 가는 이유입니다.


책에는 인생과 우주에 대한 담론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마주치는 사람을 통해서 입니다. "친한 친구가 5명 늘어날 때마다 학교폭력으로 발생하는 학생들의 자살 생각이 10%씩 줄어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생명은 안과 밖이 쉼없이 넘나들어야 하는데, 이런 생명활동을 윤리적으로 표현하면 우정이 됩니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중년과 노년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질을 결정짓는 것은 친구입니다.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각종 질병의 원천은 고립감입니다. 쉽게 말해 친구가 없어서 일어나는 증상입니다. 또한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는 '무지'에서 오는 자승자박이기도 합니다.


현대인은 친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각종 상담처나 병원을 찾아다니며 하소연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그것도 시간과 비용을 엄청나게 지불하면서 말이죠. 


이런 모순을 타파하려면 우선 친구라는 존재가 생명활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또 그 사람과 맺는 관계가 곧 나다! 이것이 운명의 법칙입니다. 그런 점에서 배움이란 그 자체로 '공동체적 신체'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출산이라는 사회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연애와 임신, 출산을 거부하는 원천에는 교감능력을 잃어버렸다는 '불편한 진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토록 오랫동안 학교를 다니면서도 '사람을 좋아하는 능력'을 터득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배움을 좋아하는데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배움이 가능합니다. 그곳이 어디든지 말이죠. 책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사람이 곧 경전이고 텍스트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신영복 선생의 [담론]에 나온 한 구절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내가 징역살이에서 터득한 인간학이 있다면 모든 사람을 주인공의 자리에 앉히는 것입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유심히 봅니다. 그 사람의 인생사를 경청하는 것을 최고의 '독서'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번에 나누어서라도 가능하면 끝까지 다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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