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네번째 시간은 생명주권의 핵심, 증여와 지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명리학의 지도는 인생주기와 오버랩된다고 합니다. 식상은 청년기, 재성은 중년기, 관성은 장년기, 인성은 노년기입니다. 


젊어서는 재능과 끼를 발휘하고, 중년에는 그걸 바탕으로 재물을 일구고, 그 다음에는 그 재물을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계속 소유와 증식에 머무르게 되면 운은 완전히 막히게 됩니다. 따라서 중년 이후에는 반드시 재물을 사회적으로 순환시켜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증여는 의무나 관습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구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전 우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은 자의 고귀한 실천인 거죠. 만약 이 증여의 흐름에 참여하지 못하면 결국 자식에게 '약탈'당하게 됩니다. 


물론 자식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주고 싶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자식의 삶을 이롭게 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훨씬 더 많죠. 자식을 위해서라면 더욱 증여의 파동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파동은 돌고 돌아 반드시 자식이나 후손에게 복된 리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위해 직접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 뒤에서 몰래 군자금을 대주며 독립운동가를 후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놓고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들 덕분에 독립운동이 힘을 받을 수 있었죠. 독립운동가들과 이들을 후원해준 사람들의 후손들이 지금에 와서 독립유공자의 자손으로 유무형의 혜택을 받는 것도 이러한 파동의 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재물이 그렇게 흘러야 관운 역시 열리게 됩니다. 관운은 인복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관성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책임감이 지배욕으로 바뀌는 지점입니다. 여기에 맛이 들면 권력에 중독되어 버립니다. 따라서 반드시 인성으로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인성은 지혜입니다. 지혜는 인생과 우주에 대한 탐구입니다. 당연히 책을 읽어야 합니다. 독서인에 불과한 사대부가 조선왕조 500년을 다스릴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생로병사, 흥망성쇠의 이치에 대한 탐구 없이 정치를 한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패착입니다. 


아울러 노년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도 거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잘 나가는 경영인이나 최고의 정치가도 결국 은퇴를 합니다. 그때 필요한 건 딱 두가지 뿐. 철학과 우정입니다. 그런 노년을 맞이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축복은 없을 테고, 또 그런 노년이라야 비로소 청년들의 멘토가 될 수 있습니다. 


노년의 지혜와 청년의 열정, 청년의 끼와 노년의 경륜. 그리고 이것들의 활발한 교차! 정치경제학이 삶을 창조하는 것이라면 그 창조의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이어야 한다고 작가는 강조합니다.


명리학은 모든 사람의 운명이 창조와 순환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걸림돌에 발목이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매끄럽게 조율할 필요가 있습니다. 식상이 부족하면 표현력을 키워야 하고, 재성이 없으면 실전의 현장에 참여해야 합니다. 관성이 부족하면 책임감을 연마해야 하고, 인성이 모자라면 정신적 가치를 습득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사람들은 부와 권세에 대한 불평등에는 매우 민감합니다. 하지만 본성과 우주가 마주치는 덕목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무관심합니다. 가장 뚜렷한 항목이 증여와 지혜입니다. 증여 없는 지혜도 없고, 지혜 없는 증여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증여와 지혜는 생명주권의 두 축입니다. 증여도, 지혜도 다 흘러가는 것입니다. 신체의 역량은 그 흐름 속에서만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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