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에서 고미숙 작가는 청년들에게 얘기한다. 왜 백수로 사는 게 좋은지 그리고 왜 백수로 살아야 하는지. 유쾌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그 당위성을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기존에 사람들이 하던 노동이 점차 인공지능을 위시한 기계들에 의해 대체되고 있고, 단순노동뿐만 아니라 전문직의 영역에도 기계화, 자동화의 물결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오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작가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지 하나씩 짚어본다. 그리고 백수의 롤모델로 조선 시대의 선비 연암 박지원을 내세운다. 그런데 왜 연암 박지원인가? 그리고 왜 백수여야 하는가?





"자립, 우정의 연마, 유목(노마디즘), 배움"



백수로 살아가는 데 가장 핵심적인 내용들이다. 백수로 살아가려면 일단 자립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정을 연마해야 한다. 혼자 고립되어 사는 것은 다른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지만 백수에게는 절대 피해야 할 일이다. 우정은 백수에게는 가장 큰 자산이기도 하다. 


그리고 백수는 가진 게 없다. 그래서 몸이 가볍다. 당장에라도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 정규직 같이 어디엔가 매어 있는 타임 푸어와 다르게 백수의 가장 큰 재산은 시간이다. 따라서 원한다면 어디로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배움. 배움은 책에 한정되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배움터다. 타임리치이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지도 조급하지도 않다. 길을 걷다가도 꽃히는 게 있으면 거기 주저앉아 골몰할 수 있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게 백수다. 그렇게 백수는 책과 세상을 통해 자신과 세계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간다. 자신을 아는 만큼 타인을 이해하게 되고 아는 만큼 보게 된다.


이러한 백수의 삶을 한평생 가장 잘 실현해낸 이가 바로 연암 박지원이다. 그는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소위 금수저였다. 본인이 원한다면 출세하여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능력도 배경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오히려 관직을 줄려고 하는데도 애써 피해가며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자유롭게 살기를 바랬다.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또한 연암은 늘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다. 밥을 먹을 때도, 놀러 다닐 때도, 여행을 갈 때도 늘 곁에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성향도 한몫 했겠지만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뭔가를 하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낯선 장소에서 우연히 재밌는 글을 발견했다가 그 자리에서 그걸 다 배껴썼다. 그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웃게 해주고 싶어서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호질'이었다.


연암의 이러한 특성이 온전히 발휘된 작품이 바로 '열하일기'다. 40대 중반, 청 황제의 고희연을 축하해주기 위한 사신단에 합류하여 중국 2700여리를 주유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게 열하일기다. 작가가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고 치켜세울 정도로 뛰어한 작품성을 지닌 이 책에서는 연암의 세계관을 잘 들여다볼 수 있다. 곳곳을 유랑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하고 또 배우고. 끊임없이 사유하면서 길을 나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오늘날 백수가 지향해야 할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다.



작가는 앞으로 점점 백수가 대세인 시대가 될 거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부정하진 않는다. 자본'만'을 우선시하는 행태는 결국 불행의 길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자본이라는 욕망의 속성을 알고 그걸 어떤 방향으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삶의 모습이 백수인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이다. 선택은 자유다. 단지 그 선택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만 가지면 된다.백수로 살지 정규직으로 살지 아님 또다른 형태로 살지도 마찬가지. 그런데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다르다. 백수로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좀 더 명확한 방향을 잡고 자신의 길을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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